약간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 보려고 합니다.  고대 종교에서 신에게 사람의 생명을 바치는 인신제사는 흔한 일 이였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인신제사는 고대 중근동에서도 매한가지 였습니다.  예를 들어 건장한 청년의 몸을 찢어서 아나트 (아세라) 여신에게 피를 바친 다던지 하는 인신제사가 행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아이를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몰록신의 인신제사는 유명하며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이들을 몰록 신에게 바치는 것이 바이블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훼는 어땠을까요?  과연 야훼에게 바치는 인신제사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 보는 것이 오늘 글의 의도입니다.  제가 이런 잔인한 주제를 건드리는 이유는 과연 유대의 야훼가 고대 이방신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을 던지고자 함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야훼에게 바치는 인신제사의 흔적이 바이블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1. 레위기 출애굽기 에스겔의 몇 구절들

일단 레위기 에서 인용합니다.


27:28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7:29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여호와께 바친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좀 섬찟 하군요.  이런 구절들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응은 두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글의 끝에 건드리고 넘어가기로 하고 다른 구절들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온 구절들입니다.

 

22:29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지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22:30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칠 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 일 만에 내게 줄지니라

 

처음 난 아들을 야훼에게 줄 것이라는 구절인데, 소와 양도 그와 같이 처음 난 것들을 야훼에게 주라는 구절입니다.  현대에는 자식을 어떤 종교에 바친다는 표현이 그리 어렵지 않게 쓰입니다.  바로 성직자가 된다는 그런 의미인데, 유대인들은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지파가 레위 지파로 못 박아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첫 아들을 야훼에게 바친다는 것은 성직자가 되는 그런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첫 아들을 야훼에게 주라. 그것도 소와 양이나 마찬가지의 일례로 표현된 첫 아들 바치기.  소와 양은 바친다는 의미가 뻔할 뻔짜 입니다.  태어난 지 팔일 밖에 안된 소와 양을 가지고 무얼 하겠습니까?  신전에서 이유식 먹이며 키울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야훼에게 준 그 첫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레위기 에서는 분명 바친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만..

에스겔에서 한구절 인용합니다.

 

20:26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이걸 어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말대로만 하면 야훼가 진짜 신인 것을 보이기 위하여 장자들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방조 내지는 조종했다는 것 같은데..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요.  이 구절은 그 당시 인신제사가 광범위하게 행하여 졌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넣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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