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3·4위전을 벌여 우리와 더욱 가까워진 터키에 가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각 동전과 지폐마다 다른 인물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한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터키의 돈에는 가장 작은 동전부터 가장 큰 지폐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같은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의 얼굴이다.  주목할 점은 터키는 인플레이션이 심해 수시로 새로운 고액권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새로 도안된 고액권에도 항상 케말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가 만약 살아 있는 독재자라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지 거의 70년이 되었고, 그렇다고 북한의 김일성처럼 그의 아들이나 가족이 절대적인 권좌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이토록 범국가적으로 추앙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의 업적을 살펴보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터키 공화국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독일과 동맹을 맺은 후 패전국이 된다.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이같은 기회에 터키를 사실상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터키와 사이가 나쁜 그리스를 앞세워 터키를 침략한다.  이 때 케말 아타튀르크(그 당시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는 구국 전쟁을 지휘하여 그리스를 앞세운 영국과 프랑스의 터키 식민지화 야욕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만들어 터키는 당당한 독립국으로서의 역사를 이어가게 된다.

        
이 후 무스타파 케말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마지막 술탄(터키의 황제)인 메멧 6세를 폐위시킨 뒤 터키 공화국을 세우고 초대 대통령이 되어 사실상의 독재자로서 종신 집권해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라는 성을 쓰게 된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나 인도네시아의 스카르노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대부분의 개국공신형 독재자의 말로가 좋지 않는데 반해 케말 아타튀르크가 사망한 후 70년이 지나도록 범국가적인 추앙을 받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아동용 또는 청소년 도서로 종종 출판되는 세계 위인 전집에 이 케말 아타튀르크가 포함된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 등은 거의 예외 없이 포함돼 있다.

        
영어의 ‘Biography'라는 단어와는 달리 한국에서 ’위인전‘이라는 단어는 그 대상이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인물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러나 정말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알렉산더 등이 존경할만한 인물인가?  그들은 자신의 힘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국가와 민족을 침략하여 괴롭히고 살육을 일삼았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국가의 수많은 국민들 또한 전쟁터에 보내 희생시킨 전쟁광들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나마 13세 때 아버지를 잃은 사실상 고아로서 자신의 생애 동안 세계 최대의 대제국을 이룩한 칭기즈칸이나 식민지 코르시카 태생으로 자신의 조국을 정복한 프랑스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그래도 삶과의 힘겨운 투쟁이 돋보이는 면이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경우는 부왕인 필립포스 2세로부터 강국을 물려받아 그 힘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를 침략한 침략자인지라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만약 한국의 아동 도서 출판사가 히로히토 천황의 위인전을 펴내고자 한다면 출판도 하기 전에 회사의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무슨 훌륭한 인물인양 당연히 위인전에 나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알렉산더 등이 위인으로 대우 받는 것은 그들이 용감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용맹은 침략자를 맞아 싸우는데 사용해야 빛이 나는 것이지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알렉산더 등과 같이 주변의 국가와 민족을 침략하는데 사용했다면 조금도 존경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 반면 케말 아타튀르크는 진정한 의미의 용사였다.  그는 또한 1차 세계 대전 중 술탄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터키는 타민족을 지배하는 것을 포기하고 터키군은 오로지 터키 본토를 사수하는 데만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는데, 이러한 그의 견해는 당시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적인 행태와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전성기 때 아랍권 전체와 북부 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그리스, 동유럽 일부를 점령하고 수많은 민족을 그 지배하에 둔 대제국이었다.  그러한 역사를 지녔으니 어찌 전설적인 정복왕과 명장들이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터키 국민들은 그러한 인물들보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케말 아타튀르크를 훨씬 훌륭한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으니 터키인의 역사관이 올바로 잡혀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바와 같이 우리의 위인관은 다소 잘못돼 있다.  그 잘못된 위인관을 수정하기 위해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읽는 위인전집에서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알렉산더와 같은 인물을 삭제하고 케말 아타튀르크와 같은 인물을 올려야할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도 구한말 때 케말 아타튀르크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일제 치하의 치욕을 겪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 케말 아타튀르크가 한국의 어린이나 청소년이 읽는 위인전집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더욱 당연하게 느껴진다.

        
끝으로 케말 아타튀르크의 터키에 대한 애국심이 간결명료하게 표현된 말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터키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우리 한국인들도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남들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본국인과 해외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식이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게 되려면, 본국과 해외동포 사회의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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