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8월만 되면 금년 광복절에는 또 얼마나 많은 권력형 비리 사범과 부정부패 사범이 “국민 대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사면을 받고 풀려날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짐을 금할 길이 없다.  군정시대의 광복절 사면은, 군부 독재가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민주투쟁을 하다 투옥된 재야인사와 학생들을 풀어주는 사례가 많았으니 그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간혹 처음부터 정치의 희생양으로 투옥되었다가 광복절을 맞아 사면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처음부터 투옥되어서는 안 될 사람을 투옥해 놓고, “국민 대화합” 운운하며 부슨 큰 은전이나 베푸는 양 하는 한국 정부의 모습을 바라보면 씁쓸해지는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광복절 사면을 통해 풀려나는 권력형 비리 및 부정부패 사범들은 대부분 정권을 배경으로 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믿고 마음껏 국민과 국가를 상대로 도둑질을 하다가 소위 운이 나쁘게 발각된 사례들이다.  일단 이렇게 발각이 되면 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한국의 정치계는 정말 웃지 못 할 정치 쇼를 연출하기 시작한다.

        
우선 이들이 검찰에 소환되면 기자들 앞에서 촬영과 인터뷰에 응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부정부패나 비리 사범들은 반드시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받게 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검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되면, 이들에게는 별다른 선처 없이 중형이 선고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정부는,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재판부의 중형 선고는, 비리와 부정부패를 근절하려는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투옥되는 당사자들의 표정은 침통하지만, 그것은 연극일 뿐 그들은 알고 있다.  형량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내년은 아닐지 모르지만 후년 광복절쯤에는 풀려나게 된다는 사실을.

        
이러한 판에 짜인 정치 쇼가 각본의 수정조차 없이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쇼에는 여당, 야당,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을 철저히 신봉하는 이들 정치인들은 내가 상대편을 잘 봐 줘야 상대편도 나를 잘 봐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상대편의 비리를 캐내는 데는 인정사정 없이 달려들다가도, 일단 투옥된 사람을 사면해주는 데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니 더 나가, 정권이 바뀌어도, 새로 정권을 잡은 정당은 자신들이 야당 시절 그토록 성토하던 권력형 비리 및 부정부패 사범들을 스스로 사면해준다.  일단 2, 3년 지난 뒤에는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고 관심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건을 정치적 쟁점화 해 봤자 아무런 소득이 없기 때문에, 상대편에게 인심이나 써서 훗날 자신들이 같은 처지에 처하여 투옥되면, 상호주의 차원에서 상대편도 자신들을 단기간 내에 사면해 줄 것을 바라며 취하는 계산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계산은 실제로 맞아 떨어진다.

        
이렇게 사면을 받은 권력형 비리 및 부정부패 사범들은 곧 정치계로 복귀하여 당직을 맡기도 하고, 공천을 받아 선거에 나가고 또 많은 수가 당선도 되곤 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민도가 좀 높아져서 정당들이 이런 인사들을 공천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천은 안 해 줄지 몰라도, 높은 당직을 준다든지, 공기업 사장이나 이사로 임명한다든지 해서 잘 먹고 잘 살게 길을 열어준다.

        
이렇게 관례화된 정치 사면은 그 자체만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인데, 더욱 슬픈 일은 민족 최대의 경축일인 광복절이 매년 어김없이 이러한 정치 쇼에 이용되고, 또 그러한 정치 쇼가 “국민 대화합”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하에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민 대화합이란 말인가?

        
자민당 정권 시절 일본 정치인들이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하면, 한국과 중국 정부는 참배 자체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8월 15일 참배는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나도 한국의 정치사면에 관하여, 한국의 현재와 미래의 정치인들에게 비슷한 요구를 하고 싶다,  이제 정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 사면은 그만 두라고.  그러나 서로서로 잘 봐줘야하는 입장이라서 그러한 정치 사면을 계속해야만 한다면, 제발 광복절만은 피해서 하라고.  그리고 “국민 대화합”이라는 역겨운 미사여구도 쓰지 말라고.

        
민족의 신성한 경축일이 양식 없는 정치계에 의하여 매년 이런 식으로 농락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비애마저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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